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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서] 정이서 "박찬욱 감독님과 작업, 신기하고 감사했죠" [일문일답]
2022.03.14

사람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정이서는 초록에 가까운 배우다. 편안하고 온화한 분위기에 싱그러운 미소가 인상적인 사람. 꾸밈 없는 몸짓과 언어로 긍정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지난 2019년 영화 '기생충'에서 백수 기택(송강호)을 혼쭐내는 젊은 피자 가게 사장으로 등장한 정이서. 당초 이 역할은 40대가량의 인물로 설정돼 있었지만 봉준호 감독은 파격적으로 20대 정이서를 캐스팅했다. 역시 '거장'의 안목은 남달랐던 걸까. 그는 짧은 순간 등장하는 단역임에도 극의 메시지 전달에 큰 역할을 하며 관객의 뇌리에 남았다.


이후 정이서는 지난해 5월 방송된 tvN 드라마 '마인'을 통해 시청자들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유약해 보이지만 강단 있는 메이드 유연을 연기하며 자신만의 분위기를 구축한 그는 JTBC '설강화'에도 캐스팅되며 도전을 이어갔다.


최근 전 세계 시청자들을 홀린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도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최초 감염자 김현주 역을 맡아 짐승 같은 몸부림과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열연했다. 덕분에 시청자들의 몰입도도 한껏 치솟았다.


유어바이브 화보 촬영장에서 만난 정이서는 그간 맡은 캐릭터들과는 달리 밝은 에너지와 해사한 매력이 돋보였다.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하고 싶다는 그는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모습이 더 많은 배우임에 분명했다.


다음은 정이서와 일문일답.


-'지금 우리 학교는'이 폭발적 인기를 얻어 배우로서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 같다. 중요한 역할이라 부담감은 없었는지? 


주변의 반응에 감사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사실 부담감은 있었어요. 좀비라는 게 인간이 아니다 보니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괴물을 연기해야 해서 어려웠죠. 게다가 바이러스의 시작을 알려야 하니 부담감이 더 컸어요. 그래서 액션스쿨 다닐 때 훈련을 아주 열정적으로 했어요. 좀비 훈련에 들어가서는 일대일 레슨을 해서 안무를 외우는 식으로 준비를 했고요.


-극중 현주는 쥐에 물려서 감염이 되는데 실제 쥐랑 연기를 한 건가.


정말 살아있는 쥐였어요! 살면서 쥐를 처음 봤어요. 몸은 하얗고 눈이 빨간 쥐였던 거로 기억해요. 실제 쥐랑 합을 맞춰야 하니 쉽지 않았죠. 구멍에 손가락을 넣었을 때 물리는 타이밍이 중요했는데, 실제로 유인을 해서 쥐가 오기 직전에 빼야 했거든요. 그게 어려웠고 NG가 여러 번 났어요. 


-좀비로 변하는 장면에서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는데, 현장에서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좀비로 변하는 과정이 단계별로 있었어요. 과학실에 묶여있을 때는 중간중간 진정제를 맞았기 때문에 좀비가 되려다가 진정됐다가 하는 게 반복됐거든요. 김병철 선배님이 진정제를 놓고 제가 살려달라고 하며 의식을 잃어가는 장면이 있어요. 완성된 걸 보니까 제 눈이 사시처럼 돌아가는 거예요. 그게 제가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순간적으로 눈이 그렇게 된 건데 감독님이 그 테이크를 쓰셨더라고요.


-의도치 않았는데 몰입한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게 눈이 돌아간 거라면... 배우로서 대단히 의미 있는 경험 아닌가? 


제가 봐도 신기하고,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유독 몰입해서 했던 거 같아요. 현장에서 감독님이 '모든 걸 내려놓고 연기를 하는구나' 하시더라고요. 이 작품을 2년 전에 촬영했는데, 제가 이전엔 해보지 못한 새로운 걸 하고 싶은 시기였어요. 그땐 회사도 없어서 혼자 오디션을 보러 갔죠.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때였어요. 


-현주 역할은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지? 매력적인 등장인물이 많아서 특별히 끌린 캐릭터도 있을 것 같다.


도입부는 사람들이 잘 안 잊잖아요. 그래서 현주 역이 더 좋았던 거 같아요. 물론 죽음은 아쉬웠지만... 감독님께 감사했던 게 그때 제가 20대 후반이었어요. '학생 역할이 되겠나' 하는 생각이 있었고, 실제로도 어린 친구들이 같이 연기를 했는데 저를 캐스팅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대본 리딩 때 처음으로 4부까지 봤는데 양궁부의 장하리 캐릭터가 멋지더라고요. 걸크러시 매력이 있고 너무 멋있게 느껴졌어요.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는 동생들과 연기한 반면 '마인'에서는 주로 선배들과 호흡했다. 그때도 느낀 게 많았을 듯한데.


연기가 너무 어렵고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마인' 때도 김서형 선배님을 보며 많이 배웠어요. 전 아직 엄청난 베테랑이 아니다 보니까 좁은 시야에서 연기를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선배님들을 보면 숲을 보듯이 작품 전체를 보는데 저는 당장 앞에 해야 하는 것만 보니까 표현에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 이후 4년만에 선보이는 한국 영화 '헤어질 결심'에도 캐스팅됐는데,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


오디션을 통해서 합류하게 됐어요. 감독님 앞에 서니 너무 떨리더라고요. '어떡하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면서 들어가서 연기했는데 제가 어떤 방향으로 연기를 하면 '이렇게 해봐' 제안을 해주셨어요. 바꿔가며 연기를 했죠.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감독님이 '기생충'도 잘 봤다고 해주셨어요.


-'헤어질 결심' 촬영 현장은 어땠나.


제가 박해일 선배님의 후배 형사 역을 맡았거든요. 선배님이 하는 걸 유심히 관찰하면서 배웠어요. 감독님이 현장에서 셋팅할 때 재즈 음악을 틀어놓으시는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 없어요. 현장이 파리(Paris)로 변하는 느낌이 들어요. 감독님한테 누구 노래냐고 여쭤보기도 했죠. 재즈에 대해 많이 아셔서 잘 가르쳐 주셨어요. 


-봉준호 감독에 박찬욱 감독까지, 거장들과의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웬만한 배우들은 경험하기 힘든 일인데.


저도 믿기지가 않아요. 감독님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왜 캐스팅 하셨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어요. 재미있는 건 제가 도입부 역할을 많이 하거든요. 친구들이 '예고편 요정'이라고 놀리기도 해요. 중요한 역할이니까 나오는 거겠죠? 하하. '기생충' 때도 그렇고 '지금 우리 학교는'도 그렇고. 너무 기분이 좋고 뿌듯해요. 


-배우로서 나아가고 싶은 목표도 궁금하다.


기회가 되면 음악과 관련된 드라마나 영화에 도전하고 싶어요. 배우로서 거창한 목표보다는 지금까지 맡은 역할들이 어두운 게 많았어요. 그래서 밝은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고, 로코 같은 것도 해보고 싶습니다. 저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려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