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명미 감독이 연출한 영화 '그녀의 취미생활'은 언뜻 장철수 감독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을 떠올리게 한다.
폐쇄적인 시골 마을에서 펼쳐지는 젊은 여성의 복수극이라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폭발적이고 극단적인 김복남과는 달리 '그녀의 취미생활' 주인공 정인(정이서 분)은 좀 더 우아하고 계산적으로 복수를 감행한다. 도시에서 온 미스터리한 여자 혜정(김혜나)이 그를 돕는다.
복수극의 무대는 정인의 고향 박하마을이다. 정인은 이곳이 싫어 도피성 결혼을 했다가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한다. 그리곤 또 다른 폭력이 득실거리는 박하마을로 돌아간다.
집으로 간 당일, 하나뿐인 혈육인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정인은 박하마을에서 섬처럼 고립된다. 마을 여자들은 멋대로 정인의 집에 들어와 냉장고를 뒤지기 일쑤고, 남자들은 정인의 젊은 몸을 탐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정인이 할머니가 남긴 큰돈을 쥐게 됐다는 소식까지 퍼지자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남편마저 그를 찾아와 괴롭힌다.
딱 한 사람, 혜정만큼은 다르다. 정인의 집 뒤쪽에 자리한 저택으로 이사 온 그는 마을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지만 정인에게는 살갑게 군다. 정인의 돈에도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이제 돈이 생겼으니 취미 생활을 해보자며 다가온다. 정인은 그에게서 다도와 꽃꽂이, 수놓기 같은 기품 있는 취미를 배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긴장감이 감돈다. 혜정의 진짜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갑자기 왜 시골에 왔는지, 하는 일은 무엇인지, 가족은 없는지 등 질문이 생기지만 극 후반부까지도 답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자기 집 테라스에서 정인의 집을 내려다보는 것도 선뜩함을 안긴다. 혜정의 남편 둘이 연달아 죽었다는 것도, 그가 나타나고 전자발찌를 찬 중국집 배달부가 사라진 것도 정인은 이상하게 여긴다.
속내를 알기 어려운 혜정이지만, 어쨌든 정인은 그와 우정을 나눈다. 자기 복수극에도 혜정을 끌어들여 두 사람은 '살인 파트너'가 된다. 함께 계획을 짜고 도구를 구하고 실행에 옮긴다.
두 사람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차례로 병원에 실려 가는 것을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통쾌함이 느껴진다. 마을에서 가장 약한 존재로 보이던 정인이 악인을 하나씩 제거하는 것을 응원할 수밖에 없도록 스토리와 캐릭터가 단순 명확하기 때문이다.
서미애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올해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비슷한 평가를 들었다. 관객들은 "스릴러로 힐링하는 영화", "한국판 델마와 루이스" 등 평을 남겼다. 장편 배우상(정이서), 장편 NH농협 배급지원상 2개 상도 가져갔다.
그러나 본격적인 전개까지 뜸을 들이는 바람에 연출이 늘어진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의 장르적 쾌감도 부족한 면이 있다.
하 감독은 "원작 소설을 읽고서 귀촌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장르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며 "두 주인공이 삶을 다시 찾는 과정과 관계성에 신경 썼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8월 30일 개봉. 118분. 15세 관람가.